유흥가 초입부에는 으레 파출소와, 그 근처에 약국이 있게 마련이다. 지금의 한석율과 성준식 같이 술 마시고 실수를 저지르는 인간들을 위한 자연스러운 배치였다. 한석율은 약국 문을 열었다. 약사는 취해서 이성을 잃은 남자들을 하도 많이 봐서인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약을 내밀었다. 돈을 내며 흘끔흘끔 뒤돌아보니, 성준식은 이미 밴드와 약을 사서 정수기 옆에 걸린 작은 거울을 들여다보며 붙이고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와 옷 매무새가 마치 쉬는 시간에 싸움박질을 하다가 끌려온 중학생마냥 가관이었다. 아마 자신의 꼴도 그럴 것 같았다. 이대로 내일 출근하면 변명의 여지도 없이 둘이 한 판 붙었음을 모든 사람들이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을 터였다.
눈 가에 난 상처에 살색 밴드를 붙이던 준식은 통증에 인상을 찌푸리고 짜증을 냈다.
"아 씨... 이래가지고 내일 출근 어떻게 하냐고."
"왜, 또 제가 사수 쳤다고 소문 내지 그래요?"
"이게 사람을 뭘로...."
준식은 화를 내다가 그들을 차갑게 보는 약사의 눈길을 깨닫고 목소리를 낮췄다.
"됐어. 여기서 더 말 만들면 나도 곤란해. 우리 둘이 술 마시다가 다른 팀이랑 시비 붙은 걸로 하자."
“대리님이랑 제가요? 말이 됩니까? 사이 안 좋은 거 다 아는 마당에.”
석율은 어이없다는 듯 크게 실소를 터뜨렸다.
“꼭 그렇게 따지지. 뭐 하나 수월한 게 없어... 그러니까 내가.”
“절 싫어한다고요?”
“무슨 소리야. 네가, 날 싫어하잖아.”
석율은 입가에 약을 바르다 말고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실소 때문에 비뚤어지는 입가를 숨기지 못한다.
“그것도 맞고요.”
“넌 날 사수라고 생각은 하냐?”
“......사수 같아야 사수라고 생각을 하지 말입니다.”
“그래, 넌 날 항상 개떡으로 생각하잖아. 그러니까 손이 나오지, 이 새끼야.”
약을 삼키듯 쓰게 입 안으로 중얼거린다. 석율은 거울 속에 비친 그를 보았다. 그의 눈 아래 광대뼈 주변으로 푸른색 멍이 점점 번져 자주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좌우가 바뀐 작은 네모 틀 안에서 석율과 눈을 마주치며 잠깐 동안 말이 없었던 준식은 반창고 껍데기를 뭉쳐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건.....”
맞받아서 개떡같이 행동하니까 개떡으로 생각한다고 말하려던 입을 다문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준식을 상처내는 데 집중했던 석율은, 점점 취기가 떨어짐에 따라 현실감각을 회복하면서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는 한숨을 크게 내쉬고는 시선을 떨궜다. 지금까지는 어쨌든 최소한의 선은 지켰었는데 오늘 가정교육이며 소시오패스 운운에 그만 분노로 눈이 뒤집혀 하극상을 저지르고 나니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 아무리 그래도 성준식은 연상이었고 선배였으며 사수였는데.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것 같아 또다시 어제와 같은 죄책감이 스멀스멀 밀려왔다. 석율은 스스로의 감정에 반감을 가지듯 입술을 깨물었다.
약국의 유리문을 여느라 팔에 힘을 주다가, 성준식은 자신도 모르게 낮게 신음했다. 눈썹 사이를 찌푸리고 옆구리께를 손바닥으로 문지른다. 서로가 같이 때리고 맞았지만, 비슷한 덩치라도 석율 쪽이 더 뼈대가 근골이었기 때문에 꽤 충격이 있었던 것이다. 그의 상태를 눈치챈 석율은 뒤에서 문을 밀어 열어 주었다. 몇 초간, 성준식은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서 있었다. 그리고 발을 내딛는다.
석율은 신경질적으로 몇 번 눈을 깜빡거리고는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리고는 그의 뒤를 이어 다시 밤거리로 나섰다. 기분이 정말 더러웠다.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던 준식은 갑자기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만 좀 따라와."
"누가 따라가요. 저도 지하철 타야 되는데."
이빨을 내보이며 일갈하고 나서, 석율이 말을 하고 있는 도중인데도 무시하고 고개를 돌리고 다시 걷는다.
'아오 저 개새끼...'
석율은 울컥거리는 심정을 간신히 억누르고 주먹을 꾸욱 쥐었다. 성준식이 꼴보기 싫어서 죽을 것 같았다. 일할 때 기력을 소모하는 것으로도 충분한데, 불필요한 마이너스 감정 때문에 몸과 마음이 널뛴다.
역 앞까지 온 준식은 내려가려다 말고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를 스쳐 지나가려는 석율을 부른다.
"야 한석율."
"왜 부르십니까."
석율은 몇 발짝 내려가다 말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버릇처럼 표정을 읽으려고 집중한다. 내려다보며 눈을 마주하는 것은 잠시, 뭔가 말하고 싶은 듯 입술을 달싹였지만 이내 눈을 돌리고 입을 꾹 다문다. 숨을 고르며 가만히 섰던 그는 몸을 돌려 다시 거리 속으로 돌아가 버렸다.
석율은 점점 작아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씁쓸했다. 저 사람은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대화를 해 본 적이 있을까 싶었다.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은 단 한 번도 그대로 전달되지 않은 채 지엽적으로 단어에만 집착하는 그의 벽에 부딪혀 땅에 떨어졌다. 그렇다면 그의 말들은...? 석율은 그가 자신을 노려보며 반복적으로 말하던 몇 가지를 곱씹었다.
너는. 내가. 넌. 날.
무시해. 개떡으로. 꼴 보기 싫어해.
한석율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아직 시선 끄트머리에 멀리 남아 있는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 계단을 올라가 그 쪽으로 서둘러 갔다.
“따라오는 거 맞잖아.”
소주를 앞에 놓고 포차에 앉았던 준식은 앞에 석율이 와서 앉는 것을 보고 허. 하고 짧게 비웃고는 따졌다. 석율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등을 뒤로 기댔다. 술을 마시는 것을 물끄러미 보다가 잔이 비자 손을 빼서 따라 준다. 주인아주머니가 잔과 메뉴를 새로 가져다 주었다. 성준식 역시 석율의 잔을 채워주었다.
“.....성대리님.”
석율은 한숨을 길게 내쉬고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하아.... 왜 이렇게. 저는 그냥, 어제 죄송하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뭐가.”
“죄송해요, 찌질하다고 해서. 아, 물론 찌질하신 건 맞지만 말입니다.”
“그게 사과냐?”
“그렇게 밖에 살 수 없어요?”
“이게 왜 또 시작이야.”
“여자친구 많잖습니까. 남의 부인은 왜 만나요?”
“이제 안 만난다고! 어제 봤잖아, 끝냈어.”
“아~그게 그럼. 어쩐지 아주 영화를 찍으시더라니.”
준식은 소리가 나도록 소줏잔을 세게 내려놓고 석율을 쏘아보았다.
“죄송하다며. 그럼 그냥 죄송하다 하고 끝내, 이 새끼야. 왜 이렇게 말이 많아.”
“아까 친 것도 죄송해요. 물론 성대리님도 절 쳤지만.”
“와~나. 지겨운 새끼.”
준식은 끝까지 따지는 석율의 말에 헛웃음을 웃었다. 술맛 다 떨어진다며 석율을 노려본다.
소주병이 하나 둘 늘어났다. 점점 인사불성이 되어가는 두 사람은 다시 언쟁하기 시작했다. 취해서 잘 돌아가지 않는 혀를 억지로 굴리고 말꼬리를 질질 늘어뜨리며 목을 쥐어짜서 소리를 친다.
“그러니까아~ 한석율 너 때문이잖아!”
“뭐가요~ 자기가 먼저 엿먹여놓고오!”
“그때 네가, 남들 다 듣는 데 카드 한도 초과 됐다고 말한 것부터가 잘못이라고. 눈치껏 세잔 네 카드로 사서 카드 돌려주고, 어? 아 어떻게 대리님 카드를 제가 씁니까~ 하고 넘어갔어야지! 애새끼가 유도리가 이렇게 없어? 엉?”
“와, 기가 막힌다. 그래요, 제가 센스가 없었습니다. 됐습니까? 예에?”
준식은 흐린 눈을 하고 석율의 얼굴에 삿대질을 했다.
“이 한결같이 건방진 새끼야. 넌 원래 나 무시했어.”
“원래 무시한 거 아니라고요. 그러니까 애초에 한도 초과된 카드는 왜 주냐고!”
“아 몰랐어!”
“뭘 샀길래 한도가 초과가 돼나?
“옷.”
“기가 막히네.....”
석율은 취해서 잔을 잡으려다가 헛손질을 하면서 낄낄 웃음을 터뜨렸다. 그럴 듯 했다. 원래 성준식은 섬유팀답게 좋은 패브릭에 집착했었다. 고성이 오고가다가 갑자기 웃다가 하는 그들의 테이블을 미심쩍게 보며 다가온 주인아주머니가 팔짱을 끼고 못마땅한 표정을 했다. 혹시나 진상을 부릴까 싶어 석율을 옆눈으로 째려본다.
“총각. 이제 그만 마셔.”
“아니, 아줌마가 무슨 상관이야~”
못된 말투로 심술부리는 준식도 째려본다.
“아저씨도 그만 마시고.”
아저씨 단어에 벙찐 준식의 얼굴을 보고 석율은 웃기 시작했다.
“웃지 마 이 새끼야.
아줌마, 나 아직 아저씨 아니라고오. 어딜 봐서 내가!”
“으악... 아저씨래~미치겠다”
짜증을 한껏 내던 준식은 배를 잡고 웃는 석율을 보다가 웃는 꼴이 우스워서 같이 웃기 시작했다.
주인아주머니는 꽐라가 된 채 미친 놈들처럼 웃어대는 그들을 한심하다는 눈으로 보고는 부추겨서 나가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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