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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6.07 준식른 전력 60분(주제: 부재중메시지) - 회의중입니다 4

한석율은 스트레이트 잔을 집어 한번에 다 들이켰다. 40도 가까이 되는 도수에 몸서리를 친 후, 다시 성준식을 향해 눈을 든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왜 이러는지."

"네가 모르는 걸 나한테 물으면 되나."


성준식은 과일안주를 씹으며 대답했다. 


두 사람은 꽤 넓은 룸에 단 둘만 앉아 있었고, 석율은 조금 취해 있었다. 언젠가 일어났던 상황의 거울처럼, 혼자 마시던 한석율은 대리들과 술자리를 하고 있는 성준식을 전화로 불러냈다. 


한석율은 지난 주에 성준식에게 키스했다. 한 번은 실수로 치겠지만 두 번이나, 그것도 멀쩡한 정신으로.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석율의 마음속이 엉망으로 헝클어졌다는 것 외에는.


"왜 아무렇지도 않으신 겁니까."

"내가 어떻길 바라는데."

"그러니까 당신은 왜...! 전, 지금."


준식은 잔을 천천히 비우고, 눈 앞의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보았다. 혼란을 느끼는 눈이 심하게 흔들리고, 취기로 흐려져 있었다. 


"내가 아무렇지도 않은 건."


술을 한 모금 더 마시며 말을 이으려던 그는 불쑥 다가온 석율의 얼굴에 미간을 찌푸렸다. 석율이 테이블에 두 손을 짚고 일어나 몸을 앞으로 기울였던 것이다. 혀가 꼬여 있었다.


"..않은 건...? 왜? 왜인데."

"좀 앉지?"


준식은 부담스러워서 몸을 뒤로 뺐다. 석율은 "이씨..."하고 중얼거리고 오른쪽 무릎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또라이같은 행동에 질겁한 준식은 그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밀쳤다. 


"야! 어딜 기어 올라와!"

"그러니까 왜애..."


뒤로 밀려난 석율은 말 끝을 길게 늘인 후 테이블에 팔을 괴고 고개를 숙였다. 술내음이 가득 묻은 숨을 몰아쉬고 다시 고개를 든다. 준식은 헤롱대는 꼬락서니를 짜증스럽게 보았다. 그는 자기 욕망에 충실한 타입이었기에, 한석율의 멘탈 붕괴에 공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좋아한다는 걸 깨달은 게 저렇게까지 정신적 부침을 겪을 일인가 싶었다. 


"알고 있었으니까. 넌 그게 그렇게 충격이냐?"

"이거는 말입니다, 제가. 제가...."

"아, 뭐어!"

"꼭...."


성준식은 도무지 나오지 않는 진심과 그 주변을 맴돌기만 하는 술주정이 지겨워졌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석율을 밀치고 옆에 앉았다. 놀라거나 당황스러울 때 버릇으로 나오는 눈깜빡을 보며 입술을 마주대고, 곧이어 허둥대는 목을 안았다. 그는 빨아 당겼던 혀를 놓으며 물었다.


"꼭, 뭐?"


석율은 눈을 질끈 감았다. 


‘꼭, 진짜 좋아하는 것 같잖아.’


차마 말로 꺼내지 못하고 젠장, 하고 자포자기식으로 중얼거린 석율은 준식을 마주 안았다. 옷깃 사이 쇄골로 더운 숨이 토해졌다. 한석율의 손은 성준식이 즐겨 매던 넥타이를 바닥에 떨궜다. 룸의 인조가죽소파가 준식의 맨 등 아래로 빠칙거리는 소리를 냈다. 






“잠깐 다녀온다더니 소식이 없어. 뭐래?”

“안 받는데? 회의 중이시랜다.”


‘회의 중입니다’라고 부재중 메시지가 뜨는 것을 보고, 성준은 기가 막히다는 듯 눈썹을 찌그러트렸다.


“이 시간에 회의중은 무슨... 튄 거 아니에요? 아 성대리님 진짜.”


벌겋게 취한 재훈이 불평을 했다. 모여서 술을 마시던 대리들은 모두 신경질적으로 잔을 내려놓았다. 새로 온 실무직 여직원 나이 맞추기 내기에서 진 벌칙으로 성준식이 쏘기로 했던 술자리였다. 


“아~ 하여간. 잘 빠져나가.”

“얼마 나왔어?”


해준은 옆에 따로 놓여 있는 계산서를 집어들고 1/n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Posted by 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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