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준식은 알람이 울렸는데도 일어나지 않았다. 계단을 올라와 알람을 끈 석율은 죽은 듯이 가만히 엎드려 있는 그의 어깨를 흔들었다. 손을 뿌리치고 이불을 뒤집어쓰는 준식의 머리 뒤를 다시 톡톡 손가락으로 두드렸다가, 반응이 없자 안았다. 그는 몸을 크게 뒤척여 석율의 팔을 떨치고는 일어났다. 곱슬기가 있는 머리카락이 하늘로 다 곤두섰다. 이마에 내천자를 그리고 덜 뜨인 눈으로 석율을 본다.
“...몇 시야?”
“알람 울렸어요.”
그는 굉장히 저기압인 채로 머리맡에서 무심코 뭔가를 찾으려다가 멈추고는 채 뜨이지 않은 부은 눈을 깜박거렸다. 석율은 그가 비몽사몽간에 하는 일상적인 행동들을 굉장히 사랑스럽게 보고 있는 자신을 깨닫고는 가벼운 자괴감에 고개를 흔들었다.
준식은 침대에서 일어나다가 주춤했다. 여전히 이물감이 남아 있어서 상당히 불쾌했다. 혀를 차고 계단을 내려가려던 그는 다리가 풀려서 비틀 했다.
“어어”
석율이 옆에서 얼른 팔을 잡아 주자, 그는 있는 대로 인상을 쓰고는 팔을 뿌리쳤다. 비척거리면서 내려가서 식탁 앞에 기대선다. 석율은 그가 아침이면 만성적으로 찾아오는 금단증상 때문에 기분이 더 나쁘다는 걸 깨닫고 계단을 뛰어내려가 재빨리 어제 사온 니코틴 껌을 내밀었다.
퉁퉁 부은 채 껌을 입에 넣고 볼을 부풀린 그는 계속 기분이 나빴다. 석율은 그것마저 귀여워 보여 그를 뒤에서 안고 복실거리는 머리칼에 키스했다.
“손 치워.”
“에이. 까칠하게.”
준식은 싱글싱글 웃는 석율을 짜증난다는 듯 바라보았다.
양치질을 하던 준식은 세면대 거울 안의 자신을 보았다. 자신이 정해 놓은 선을 넘으면 뭔가 전과는 다른 인간이 되어 버릴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으나, 넘고 보니 그냥 심상한 일이었다. 자신은 여태까지와 별로 다르지 않은 그저 자기 자신일 뿐이다. 그러나 몸에 남은 느낌이 불쾌해서 짜증은 났다.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로 계속해서 느릿느릿 양치질을 하던 그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보았다가 울컥 화가 났다.
“야.”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면서 부르는 목소리에 귀여운 척 웃으면서 왜요? 하고 대답하는 석율을 보고, 준식은 더 화가 났다.
“이게 뭐야. 여름인데.”
석율은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목덜미의 자국들을 보고, 시선을 위로 올려 싸늘한 그의 눈길까지 보고는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와, 심하다. 오늘 밖에 못 나가겠는데요?”
그러니까 오늘은 가지 말라면서 허리를 안아 온다. 준식은 대답하기도 싫어서 그를 수건으로 후려쳤다.
*
일요일 아침부터 이미 더웠다. 안 그래도 불쾌지수가 높은 날씨에 컨디션은 바닥이고, 혈중 니코틴 농도도 떨어지고, 석율은 옆에서 치대기까지 하여 준식은 폭발 직전이었다.
“컨디션 많이 나빠요?”
“묻지 마.”
“또 하면 괜찮은데.”
“미친...! 뭘 또 해.”
준식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는 바람에 석율은 그에게 부딪힐 뻔 했다. 그가 잘 짓는, 이마에 주름을 잡고 눈을 치뜨는 표정으로 석율을 노려본다.
“싫어요?”
“됐어, 안 해. 우리 그냥 좋은 선후배로 지내요, 이 새끼야.”
짜증이 잔뜩 섞인 준식의 말에 석율은 또 빵 터져서 웃기 시작했다.
“어, 나 지금 차인 거에요?”
“저리 가라고.”
석율은 계속 성질을 부리는 그에게 참지 못하고 귀엽다고 말했다가 또 욕을 먹었다. 오픈하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바로 거절당했다. 알바생이 뒤이어 와서 석율에게 인사했다. 아침부터 웬일이시냐며 살갑게 던지는 관용적인 질문에 한석율과 성준식은 서로 딴 곳을 보았다.
*
다음 날 저녁, 석율은 오래간만에 칼퇴근을 할 수 있었다. 재빨리 그에게 문자를 보내고 찾아갔으나 카페 문을 여니 준식이 늘 서 있던 자리에는 전혀 다른 사람이 서 있었다.
“어...?”
깜짝 놀라 멍해진 석율에게 알바생이 인사를 했다.
“형은 어디 갔어요?”
“먼저 가셨어요. 아프셔서.”
그는 준식이 대타로 부른 바리스타였다. 선선한 태도로 뭘 드실건지 묻는 그에게 손사레를 치고, 준식의 집으로 뛰어갔다. 전화를 해 보지만 받지 않는다. 여러 번 반복해서 걸어도 받지 않다가, 석율이 그의 집 앞까지 다 왔을 무렵이 되어서야 준식은 전화를 받았다.
“아파요?”
- 아니. 좀.
“저 형네 집 앞인데, 올라갈게요.”
- 오지 마.
쌀쌀맞게 거절의 목소리를 들어도 석율은 이미 준식의 집 앞까지 올라와 있는데다가 비밀번호도 알고 있었다.
“이미 왔는데.”
석율은 전화를 끊은 후, 제멋대로 도어락 비번을 눌렀으나 다 누르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오지 말라니까.”
그의 얼굴이 창백했다. 순간 자기 때문인가 걱정이 된 석율은 문 안으로 들어섰다.
“어디가 아프..”
석율은 말하다 말고 멈췄다. 조금 거리를 두고 있는데도 성준식에게서 담배냄새가 쩔어 문 밖까지 퍼질 정도로 났기 때문이었다.
“헐... 담배 피웠어요?”
준식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잠깐만, 아프단 게 그럼....”
그는 여전히 묵묵무답으로 식탁 위에 놓여있던 물을 마시면서 석율을 보고는, 기력이 없는 듯 다시 침대로 가서 엎어졌다.
어떠한 심경의 변화로 한 대를 피우고 나서 갑자기 고삐가 풀린 듯 엄청나게 피워 댄 것이 틀림없었다. 분명히 두통과 구토 증세 등으로 괴로워했을 것이다. 석율 역시 과거에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줄담배를 피워대다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대충 짐작이 갔다.
“뭐 좀 먹었어요?”
“아니....”
엎드린 채 웅얼거린다. 석율은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 자신이 생각지도 못한 데에서 은근 진지하게 삽질을 하는 그가 귀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왜 웃어”
“귀엽네요 진짜.”
“나 힘없으니까 좀 가라...”
그는 엎드린 채로 꺼지라는 듯 손만 휘휘 저었다. 석율은 가방을 내려 놓고 뭔가 요깃거리라도 만들까 싶어 냉장고를 열였다. 그는 거의 아무것도 없는 내부에서 발견된 오렌지주스와 달걀의 적절한 조합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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