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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식'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6.04.09 심상하고 특별한 소장본 발매합니다 6
  2. 2016.01.22 [석율준식] Midnight movie 릴레이
  3. 2015.10.20 7:3은 3:7 1
  4. 2015.09.18 갈증 4

과거에 연재했던 석율준식 소설 '심상하고 특별한'을 묶어서 책으로 내려고 합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여 주세요~

http://me2.do/xBbi4qAc



*표지커미션: 소년 님


Posted by 마.지
,

바라는바다(cest-bon.tistory.com) 님과의 석율준식 릴레이 블로그 링크입니다.

http://yulsik-in-the-trap.tistory.com/


심심하실 때 들러주세요~



Posted by 마.지
,

7:3은 3:7

짧은 망상 2015. 10. 20. 19:47

준식은 인트라넷에 올라온 워크샵 공지를 보고 인상을 썼다. 뭔 놈의 워크샵을 또 가. 봄에 가지 않았나? 돈이 썩어 나나? 그렇게 돈이 썩어나면 16층에 캡슐커피머신이나 놔 주지. 등등은 속으로 하는 생각이고, 겉으로는 반기는 척을 해야겠기에 입꼬리를 올려 본다.

“성대리, 한석율씨, 공지 봤지?”
“예, 과장님. 기대되지 말입니다.” 

준식은 자기보다 더 잽싸게 사회적 애교를 부리는 제 부사수를 흰 눈으로 보고 얼른 입을 열었다.

“어~ 과장님. 산행이라는데요, 단풍이 끝내주겠습니다.”
“그러게 말이야. 단풍 보면서 술 한잔, 죽인다! 캬~ 응?”

가족이 모두 외국에 가서 혼자인 문과장은 환한 얼굴로 너털웃음을 터뜨렸고, 준식과 석율은 경쟁이라도 하듯 서로 작위적으로 웃었다.

*

“기대? 입에 발린 말 참 잘해, 우리 한석율씨.”
“무슨 말씀이십니까. 전 이런 거 엄청 좋아하지 말입니다. 다 같이 퐈이팅넘치게 건배! 산행! 단체생활 캬~”
“.....”
 
준식의 생각과 달리 석율은 진심으로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는 막내 포지션도 크게 싫어하지 않았다. 바쁘게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나로 인해서 조직에 피가 돈다’ 류의 자아도취를 느끼는 타입이었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말하기 싫어진 준식은 들고 있던 A4지 뭉치를 돌돌 말아 공연히 석율의 뺨을 톡 치고, 고개를 기울이며 예쁜 척 하는 걸 흐린 눈으로 보며 그를 탕비실에 남겨놓고 나왔다.



워크샵 장소는 단풍으로 유명한 강원도 모 산의 콘도였다. 계약직인 실무직들이 없어 수가 줄었지만, 평소 같으면 퇴근하여 침대에 누워 있거나 가족과 즐겁게 보낼 시간대에 거대 연회장에 줄줄이 앉아 건배하고 환히 웃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물론, 결혼 10년차 이상인 사람들은 제외하고.

누구를 위한 회식인가 싶던 자리도 술이 돌고 연회가 점점 흐트러지면서 열기를 띄기 시작했다. 윗대가리들은 별도 룸으로 빠지고, 나머지들도 팀별로 슬슬 모이거나 방으로 사라져 각자 잡담과 함께 음주분위기가 되었다. 술이 오르자 팀별 모임도 섞여 나중에 정신을 차려 보자 동기 모임으로 바뀌어 있었다.

“목말라요.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

단정한 자세를 유지 중이지만 꽤 취한 영이가 답답한 듯 단체 티셔츠 목을 당기면서 중얼거렸다. 그녀의 말에 백기가 즉각 반응했다.

“1층 가서 사 올까요?”
“문 닫았더라구요.”
“편의점 가죠.”
“아니에요. 꽤 멀던데.”
“편의점? 그럼 난 설#임! 아 탄산수도! 과자도!”

엉덩이 들 태세였던 백기는 냉큼 끼어들어 대답하는 석율을 보고 인상을 쓰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제가 왜 한석율씨 아이스크림을.”
“아, 알았어. 그러지 말고, 우리 게임해서 지는 사람이 가는 걸로 하자구, 친구들, 어때?”
“무슨 게임이요?”
“당연히 대작?”
“싫습니다.”
“자기가 불리하니까.”
“그냥 끝말잇기 해요. 저, 백기씨, 석율씨 순서.”

고개를 끄덕이는 둘을 보며 영이는 진지하게 운을 띄웠다.

“그럼 할게요. 칼륨.”
“장백기 딱! 걸렸네, 없네~.”
“륨본드.”
“뭐야. 백기씨, 전문용어 쓰기 있어?”
“드!”
“거 참 왜 소리를 지르고... 드라마.”
“마그네슘.”
“영이씨, 저 미워해요? 슘페터.”
“헉 미친! 그걸 또! 슘페터... 터...”

석율이 막히는 순간 둘은 눈을 반짝거렸다.

“10, 9, 8...”
“아니 영이씨, 이러기야? 카운트다운 갑자기 왜 생겼는데?”
“7, 6...”
“아 잠깐 잠깐마안~”

분명히 단어가 있을 텐데 술기운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발을 구르며 반항하던 석율은 결국 패자가 되어 나설 수밖에 없었다.

*

편의점은 콘도에서 나와 주차장 아래 내리막길을 한참 지나 숲길로 걸어가야 있었다. 석율은 추리닝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산이라 제법 쌀쌀한 바람에 인상을 찌푸리고 고개 숙여 불을 붙인다. 고개를 든 그의 눈에, 숲길 옆 바위 위에 동그마니 앉은 호리호리한 실루엣이 보였다.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려 복슬복슬하게 부풀고, 혼자 튀게 단체 티셔츠가 아닌 새파란 티를 입고 앉아 먼 곳에 눈을 두고 있다.

“성대리님.”

준식은 석율의 목소리에 두 손을 들며 반겼다.

“썽뉼아~ 우리 썽뉼이, 왜 나왔어.”

취했구만. 괜히 아는 척 했다는 후회에 석율이 발걸음을 슬슬 물리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성준식은 반색하며 바위 위에서 달랑 뛰어내려 다가왔다.
 
“대리님은 왜 나와 계십니까?”
“나? 나야 뭐...”

준식은 말 끝을 흐리며 석율이 손가락 사이에 끼워놓은 담배를 재빨리 가져다 한 모금 피웠다.

“어디 가?”
“아이스크림 사러... 같이 가실래요?”
“갔다 와라.”

그가 손을 내젓는 걸 보고 석율은 더 이상 권하지 않고 발걸음을 계속 하려고 했으나.

“아, 잠깐만.”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역시나, 하고 멈춰 섰다.

“왜요.”
“가는 김에 내 꺼도 사와.”
“뭐 사다 드려요?”
“뭐든 너 사고 싶은 걸로, 10개.”
“열 개요? ...대리님도 벌칙으로 나오셨죠?”
“들켰네~"

준식은 취기가 오른 얼굴로 장난스럽게 눈을 반짝거렸다.

“찾아보고 있으면 그런 걸로 사와. 그런 거.”
“뭐 말씀이십니까. 비#빅? #밤바? 아님 붕어빵모양 그거?”
“우리 한석율씨 역시 눈치가 빨라.”

심부름을 맡아 심사가 뒤틀린 두 사람은 악의적으로 낄낄 웃었다.

“프흐, 가시죠.”
“아니, 너 갔다 오라고.”

물론 석율은 끝까지 웃지 못했지만.

*

석율은 오르막길을 느적거리며 올라왔다. 양 손에 봉투를 든 데다 숨이 차서 슬슬 화나는 마당에, 팔다리 편하게 늘어뜨리고 앉아 자기한테 뺏은 담배를 맛있게 피우는 준식을 보니 더 짜증이 났다.

“사왔습니다.”
“어~ 썽뉼. 수고했어.”

봉투를 받아 들려던 준식은 석율의 가슴에 뚫어지게 시선을 두었다.

“또 왜요.”

석율은 짜증난 티를 내려다가, 긴 손가락이 티셔츠 아랫자락을 잡고 훌렁 들치는 바람에 기겁을 했다.

“뭐 하시는!"
"섰네?"
"섰...? 아니 이거 놓으시라구요! 익!"

실제로 서울보다 쌀쌀한 날씨 때문인지, 화가 났기 때문인지 유두가 서서 티셔츠 위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양 손에 비닐봉투를 들고 있어서 속수무책으로 당한 석율은 몸을 흔들어 준식의 손을 떨쳤다.

"성희롱 아닙니까?"

준식은 다 피운 꽁초를 바닥으로 떨어뜨리며 뻔뻔하게 응수했다.

"너랑 나 사이에 성희롱은 무슨."
"사귀는 사이에도 성립하지 말입니다."
"여고생처럼 왜 그래? 닳냐?"
"워우, 소름돋아. 그럴 때 진짜 아저씨 같은 거 아세요?"
"내 꺼 줘. 이거, 딸기맛."
"...."

평소처럼 제 말은 귓등으로도 듣고 있지 않았다. 석율은 뭐라고 더 말하려다 포기하고, 비인기 아이스크림들 사이에 숨어 있는-원래는 자신이 먹으려고 산-요거트맛 바를 꺼내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짙은 핑크색 얇은 혀 끝으로 연한 핑크색 바를 핥아 올리고, 불투명한 흰 액체가 혀 위로 녹아 내리는 것을 보고 괜히 귀가 뜨거워져 고개를 숙였으나, 곧 들고 옆눈으로 훔쳐 보았다. 야외에서 옷도 들침당한 마당에 망상이 그렇게 큰 죄랴 싶었다. 숲 옆 길을 차박차박 발걸음 소리만 내며 말없이 걸어올라가던 석율은 갑자기 걸음을 멈춘 준식에게 맞춰 섰다.

"에이. "

준식은 아이스크림을 다른 손에 옮겨 쥐고 탈탈 털었다. 손등에 연한 핑크색으로 방울져 녹은 아이스크림이 떨어져 있었다. 석율은 허리를 굽혀 봉투 두 개를 바닥에 내려놓고 준식의 손을 잡았다. 준식은 제 손등에 떨어진 아이스크림을 핥는 숙인 얼굴을 물끄러미 보았다. 보일 듯 말듯 잘 생긴 눈썹이 찌푸려져 미간에 선이 가고, 예민한 피부를 지나는 혀 끝은 간질거리고, 치뜨는 눈은 건방졌다.

"...대리님."

준식은 그가 제 입가를 핥고 달콤한 맛이 남은 혀와 입 안을 맛보도록 내버려 두었다. 내려뜨린 손에 들린 하드가 녹아 아스팔트에 희미한 얼룩을 만들었다.

*

"그래서, 마부장 거기서 백만원 털렸잖아."
"미친 새끼! 후환은 어쩌고?"
"존나 기억못해. 하나도 기억못한다고오~"

석율은 허세스럽게 떠드는 준식을 흐린 눈으로 보며 봉투에서 하나씩 아이스크림을 꺼내 모두에게 내밀었다. 말랑한 기분이 되어, 아이스크림만 건네고 준식과 같이 사라지려고 했는데 갔다 와 보니 어찌 된 노릇인지 대리들과 자신의 동기들은 같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입 안 뿐 아니라 몸을 팔 안에 바짝 안고 누구보다 가깝게 맞대고 싶은 욕망은 자신만의 것이었는지, 성준식은 제 동기들과의 잡담에 금방 빠져들어 술을 마시고 있었다. 못마땅한 얼굴로 술을 한 잔 따르러 왔던 석율은 준식에게 어깨를 잡혀 옆에 억지로 앉았다.

"야, 얘가 왜 째려보고 있냐?"

취한 준식은 울화 때문에 여즉 곤두서 있는 석율의 한 쪽 유두를 손끝으로 꾹 눌렀다.

"성.. 성대리님."

버럭 화내려다 자리가 자리인지라 겨우 웃으며 가슴을 가리는 석율을 보고 대리들은 낄낄 웃기 바빴다. 이미 만취해서 이성적 판단을 상실한 데다, 같은 남성이라서 경계심도 희미했다.

"나도 해 볼래, 띵동~"
"이리 와 봐, 우리 한석율씌!"

석율은 애써 웃는 표정을 유지하며 슬슬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 본인이 오지랖이 넓은 만큼 많은 것에 관대한 그였지만 이건 좀 곤란했다. 그 때, 준식이 석율 앞을 막아섰다.

"야!!! 이것들이...! 어디서 함부로 건드려~ 남의 사수를."

취한 목소리지만 꽤 정색하고 있었다. 석율은 근본적인 원인제공자가 성준식이라는 것도 잊고 감동했다.

'웬 일로 대리님이 날...'
"만지려면 돈 내고 만져!"
"감사.... 예??!!!"

준식은 경악으로 말문이 막힌 채 입을 뻐끔대는 석율을 뒤에서 안았다.

"한 번 누르는 데 만원."
"폭리 아냐?"
"만원 내지 뭐. 평소에 인사 잘 하고 일도 잘하니까."
"아니! 아니 잠깐 이건! 제 인권은요? 악!!"

석율이 발버둥치고 대리들이 폭소를 터뜨리며 만원씩 내는 동안, 백기는 흐린 눈으로 구석에서 탄산수를 마셨다. 영이는 자연스럽게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못 도와줘서 미안합니다, 한석율씨.'

석율이 강제 띵동을 당하는 동안 마음 속으로 사과하던 그는 강해준 대리가 흥미 없다는 표정으로 인상을 쓰며 제 옆에 앉는 바람에 얼른 병을 집어 들었다. 존경하는 제 직속 사수가 저런 남학교스러운 장난에 흥미가 없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강대리님, 저, 한 잔 드리겠습니다."

해준은 백기의 말에도 묵묵히 잔을 받으며 붉어진 눈매로 그를 멀거니 보다가, 갑작스레 그의 가슴을 꾹 눌렀다. 그리고 백기가 얼어붙어 있는 동안 한 번에 잔을 다 비우고 그걸 되돌렸다.

"백기씨도 한 잔 받으세요."

돌이 된 듯 굳은 백기의 뒤로 한석율이 아햐학 간지럽..! 그만하시라구여! 하고 발버둥치는 소리가 아련하게 메아리쳐 들려 왔다.

*

"뭘 그렇게 삐지고 그러냐. 장난이잖아."
"상대방도 재미있어야 장난 아닙니까?"
"아홉, 열, 열하나. 십일만원 벌었다."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늘 그렇듯 귓등으로 안 듣는 태도에, 석율은 길게 한숨을 쉬고 준식을 노려보았다.

"...반띵해요. 제 몸인데 저도 권리 있지 말입니다?"
"넌 재료만 제공했지, 포장해서 상품으로 만든 건 나잖아? 7:3."

아아앍.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며 들끓는 분노를 꾹꾹 누른 석율은 '3'을 강조하느라 손가락 세 개를 펴서 내밀고 있던 손목을 낚아채 품에 당겨 안고, 가는 몸을 덮쳐 눌렀다.

"썽뉼아, 형 피곤하니까 비켜라."
"아까 하던 거 계속 하시죠."
"싫어."

손바닥으로 뺨을 밀치던 준식은 순순히 안 밀려나는 석율에게 눈썹을 치켜올리고 이빨을 드러냈다.

"어? 이것 봐라. 야 한석율, 싫다고."
"이것도 장난으로 쳐주세요. 장난인데 왜 그러십니까."
"꼭 따져야겠냐?"
"꼭 따져야겠는데요."

석율은 머리카락이 뭉텅 잡히는 수모를 당하면서도, 발버둥치는 몸을 누르고 파란 티셔츠를 걷어 건조하고 매끄러운 피부를 핥았다. 준식의 유두는 바짝 서 있었다.

"섰네요."
"넌 이 새끼야, 꼭 그렇게 고대로, 아, 돌려줘야 직성이..!"

유두를 혀 끝으로 자극당하는 찌릿한 느낌 때문에 붕 뜬 채 불평하던 목소리는 조심성 없이 와 닿고 혀를 물어 당기는 입술에 의해 중간에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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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대리님이 처음에 말리다가 '만지려면 돈내고 만져'라고 말하는 상황은 낮달님 ‏@rlgudeh0216 썰에서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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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지
,

갈증

전력 60분 2015. 9. 18. 16:28

일을 다 끝내고 상큼하게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온 한석율은 제 책상 앞에 선 채 멍해졌다. 분명히 평지였는데 자리를 비운 사이 서류철 더미가 층층이 쌓여 탑이 생겨 있었다. 서류철마다 지시사항이 노란 포스트잇으로 붙어 있다. 제 사수 성준식의 깔끔한 글씨체였다. 그는 슬로우 모션처럼 천천히 몸을 돌려 준식을 보았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짱한 얼굴로 볼펜 꼭지를 입에 대고 눈을 깜빡거리며,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성대리님.”

?”

이걸, 다요?”

~”

베트남 공장 시찰 건은 성대리님이.”

한석율씨.”

 

준식은 석율의 말허리를 뎅강 잘랐다. 눈썹을 치켜올리고, 검고 동그란 눈동자를 위로 굴려 빤히 쳐다본다.

 

.”

 

석율은 입술을 꾹 누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부당한 업무 분배에 항의할 온갖 말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전투태세를 갖춘다. 그러나 성준식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나 커피 한 잔만. 갈증나네?”

 

였다. 순간적으로 힘이 빠진 석율은 얌전히 앞으로 모두었던 손을 허리에 올렸다. 그가 그 자세를 하고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입술을 조금 내미는 것은 지금부터 따지겠다라는 신체 신호였으므로, 성준식은 재빨리 한 번 더 선수를 쳤다.

 

오늘은 달달하게. 나 당 떨어졌다 썽뉼아.”

 

그리고선 쌕 웃는 얼굴은, 어이없게도 석율의 눈에 귀엽게 보였다. 그래, 좋아하는 쪽이 병신이지. 이렇게 이용당하고도 좋아하는 내가 호구지. 투덜거리면서 탕비실로 간 석율은 커피믹스도 원두커피도 싹 다 떨어진 것을 보고 더 성질이 났다.

 

다 먹었으면 좀! 채워놓든가, !”

 

탕비실 물품은 원래 총무과에서 일괄 지급하지만, 중간에 다 떨어졌을 경우 가지러 가는 일은 그 책임소재가 불분명했다. 화장실 휴지의 법칙처럼 마지막 쓴 사람이 채워놓아야 하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귀찮기 때문에 대부분 은근슬쩍 마지막 물품을 사용만 하고 사라지는 것이다. 석율 역시 가지러 가기가 귀찮아서, 아래쪽 수납함을 열고 인스턴트 커피와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바람에 오래돼서 좀 굳어진 크리머, 그리고 역시 오래되어 종이 포장이 노랗게 변해가는 각설탕을 끄집어냈다.

 

아무리 사귀는 사이라도, ? 사람이 정도가 있어야지. 다 봐주고, 다 해주고, 그래야 하나? ?”

 

영감처럼 혼잣말로 불평하며 각설탕을 컵 안에 한 개 퐁 빠뜨리고, 서서히 녹는 것을 지켜보던 그는 점점 짜증이 났다.

 

안 참아, 아니, 못 참아! 가만 안 둬.”

 

그는 팔짱을 끼고 가만 안 둘 방법을 곰곰 생각했지만 팀 막내에다 평사원 나부랭이에게 사수를 응징할 별다른 수는 없었다. 신경질적으로 각설탕 껍데기를 한 개 더 벗겨 넣고, 녹는 걸 보던 석율은 눈을 반짝 뜨곤 또 한 개, 또다시 한 개를 까서 넣었다.

 

당 떨어지셨다구요? 슈가쇼크나 겪어 보시지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개 더 빠뜨리고 스푼으로 휘휘 저었다.

 

 

*

 

그래서 각설탕 5개 넣었는데 말이지~ 커피 맛 잘 아는 척 하더니 잘만 먹어. 입맛이 애야 애.”

 

영이는 휴게실 녹색 의자에 앉아 커피를 한 모금씩 마시며 석율을 보았다. 그는 책상에 걸터 앉은 채 손짓을 해 가며 종알종알 제 사수 뒷담화를 해 대느라 뺨까지 발그레해져 있었다.

 

그럼, 특집 난 상사한테 여기까지 해 봤다’, 이제 영이씨 차례.”

전 없어요.”

“...? 잠깐만.”

저도 없습니다.”

 

나란히 앉아 있던 백기가 일어나며 덧붙였다.

 

뭐야, 이러기야영이씨? 한 개씩 말해보자며!”

 

웃음을 간신히 참은 영이는 황망한 표정의 석율에게 짐짓 엄한 얼굴로 말했다.

 

한석율씨, 그렇게 안 봤는데 무서운 사람이네요. 상사한테 당뇨병 병인이나 제공하고.”

? 아니 영이씨! 영이씨가 더 무섭...! , 백기씨, 이런 거 뭐라 그러지?”

보통 경박하다고 하죠.”

, 그거 말고. 뒷통수... 잠깐. 경박? 장백기씨까지 이러기야?”

전 일이 있어서 이만.”

 

두 사람은 걸음걸이도 단정하게 또박또박 가 버리고 말았다. 혼자 남겨진 석율은 입을 뻐끔거리다가 분통을 터뜨리며 허공에 주먹질을 했다.

 

, ! ~ 이 사회가 이렇게 무서워.”

그럼, 무섭지. 어디서 누가 들을지 모르거든.”

 

뒤에서 선명하고 맑은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석율은 등 가운데서부터 목 뒤까지 서늘하게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가 안절부절 몸뚱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동안 발걸음은 토박토박 석율의 뒤를 스쳐 앞에 와서 섰다.

 

"그래~ 우리 썽뉼이가 사수 맛있게 먹으라고 각설탕도 다섯 개나 넣어주고. 그렇구나아.“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며 두 사람은 서로의 양상에 대해 거의 파악하고 있었다. 성준식이 과하게 다정하게 말하는 것은 공격신호였다. 석율은 할 말이 없어 바닥을 보았다. 숨 막히는 침묵의 몇 초 후, 먼저 입을 연 것은 준식이었다.

 

"썽뉼아?“

", , 대리님...“

"커피 한 잔 타 와 봐. 몸에 좋게.“

"."

 

그 자리를 벗어날 일념만으로 경보 수준으로 걸어나온 석율은 제 부서로 얼른 올라가 탕비실로 들어갔다.

 

아오. 시발. 있으면 티를 좀 내든가.’

 

본인이 누구에게나 오픈되어 있는 휴게실에서 흥분하여 크게 떠든 생각은 하지도 않고 성준식을 원망하던 석율은 손을 멈추고 검은 액체를 내려다보았다.

 

*

 

성준식은 제 책상 위에 놓이는 컵을 집었다. 천천히 들어올려 입술에 가져가며 곁눈으로 석율의 반응을 살핀다. 손을 꾹 쥐었다 폈다가, 눈동자가 흔들리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 보였다. 다른 건 몰라도, 자기 바운더리 안에 든 사람에게 해 끼치는 것에는 죄책감이 강한 한석율이었다. 본인은 모르겠지만 얼굴에 매우 티가 난다. 그가 모른 척 입술을 대자, 결국 석율은 참지 못하고 컵을 빼앗아 갔다.

 

?”

나가서 사오겠습니다.”

 

석율은 질책하듯 가늘게 뜨고 보는 눈을 피해 황급히 윗옷을 집어 들고 나왔다. 발끈해서 커피에 침을 뱉으며 몸에 나쁠 거 없잖아, 그냥 아밀라아젠데.’라고 합리화했지만 결국 셀프 설득은 실패였다. 그는 성준식이 선호하는 캬라멜 마키아또를 잽싸게 사 와서 다시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서류 결재를 기다리듯 손을 공손히 모으고 앞에 선다.

 

너 먼저 마셔봐.”

 

준식의 목소리에는 이미 의심이 꽉 차 있었다. 석율은 쭈뼛쭈뼛 리드를 열어 한 모금 마셨다. 액체가 목구멍까지 꼴깍 넘어가는 걸 관찰하고 나서야, 준식은 커피를 받아 마셨다. 석율은 가시방석에 앉은 듯 매우 불편하게 자리에 앉아, 이등병처럼 정자세로 일을 재개했다. 몇 분 후, 평온한 목소리가 다시 그를 불렀다.

 

한석율씨. 내일은 자바칩 프라푸치노.”

예이...”

 

석율은 지은 죄가 있어 반항도 못 하고 대답했다.

 

*

 

요즈음 일은 계속 바빴다. 섬유팀이 관리하던 공장 중 일부는 대서양 물산과의 합작 법인 설립과 함께 그쪽으로 넘어갈 계획이었다. 그 날도 야근 확정이었고, 문과장은 윗선과 회식을 빙자한 회의를 가고 없었다. 석율은 피곤에 찌든 채 기지개를 켜다가, 성준식과 눈이 마주치고 얼른 손을 내렸다. 오전에 자신의 행동을 들킨 후 그는 아직까지 준식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피곤해?”

, 아닙니다.”

피곤하잖아. 커피 한 잔 타줄까?”

????”

 

석율은 그의 말에 너무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디 아프세요?”

, 넌 꼭 말을 해도 그렇게. 싫음 말고.”

그게 아니라, , 좋은데.”

 

석율이 말 끝을 흐리자 준식은 자리에서 일어나 탕비실로 사라졌고, 잠시 후 커피잔을 손에 들고 나타났다.

 

.”

 

석율은 코 밑에 디밀어진 종이컵을 보며 눈만 깜빡였다. 복수? 비꼼? 확률은 낮지만 순수한 호의? 뭔지 판단을 하지 못한 채 굳어 있자 준식은 짜증을 냈다.

 

안 받아?”

 

손에 쥐어 주고 자리에 앉는다. 석율은 종이컵에 입술을 가져다 댔지만, 곧 뗐다. 자신이 마시는지 안 마시는지 곁눈으로 보고 있는 게 수상했다.

 

“...솔직히 말해 보십쇼. 대리님, 여기 뭐 넣으셨죠.”

, . 내가 너야? 말 하는 거 보니 아까 뭐 넣었었구만. 어쩐지.”

.....그게.”

그런 짓 안 하니까 마셔, 마셔.”

 

손짓을 까딱 하며 마시라고 종용한다. 석율은 할 수 없이 컵을 기울여 한 모금 마시며, 컵 너머로 눈을 굴려 준식을 노려보았다.

 

아무것도 안 넣었는데도, 맛있지?”

“.....예에....”

 

찝찝하게 대답하느라 어두워진 표정을 관찰하던 준식은 낄낄 숨을 들이마시며 웃음을 터트렸다.

 

당최 못 숨겨. 멀었어, 한석율.”

왜 웃어요! 역시 침 뱉으셨죠?

뭐하러?”

 

준식은 의자를 뒤로 밀며 자리에서 일어나 석율의 멱살을 잡아 끌었다. 커피로 쓴 맛이 나고 촉촉해진 석율의 혀는 준식의 혀와 엉켰다. 매끄럽게, 표피가 아닌 안쪽부터 오싹하는 근질거림이 밀려 올라와 코로 단 숨이 흘러나왔다.

 

어차피 서로 다 왔다 갔다 했잖아.”

 

석율의 입 안에서 혀를 빼내고, 입술을 적시며 말한다. 석율은 입 안에 고인 액체를 목 안으로 넘기고, 얄밉게 웃는 보조개진 두 뺨을 두 손으로 감싸 다시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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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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