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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율은 쇳소리 섞인 숨을 몰아쉬며 상체를 들었다. 민망할 정도로 거칠어진 호흡을 숨길 생각조차 없었다. 준식은 침대에 얼굴을 묻고 있어 뒤통수만 동그마니 보였다. 베갯잇을 손 안에 말아 쥔 채 크고 깊게 숨을 들이키느라 붉은 자국이 가득한 등이 오르내린다. 석율이 몸을 빼자 그대로 드러난 엉덩이가 불규칙하게 흠칫거렸다. 석율은 막 사용한 콘돔을 묶어 쓰레기통에 던진 후, 무거운 몸을 침대에 털퍽 쓰러뜨리고 모자란 숨을 보충하려 헐떡였다. 엇갈리는 두 개의 숨소리가 잦아들고 나자 그는 입을 열었다.

 

전 대리님을 좋아하는 게 아닙니다.”

 

섹스 후에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

그들의 섹스는 이것이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사고였다. 프로젝트 구상 단계에서 석율은 사수인 준식이 자기 아이디어를 갖다 썼다며 불만을 표했고, 준식은 우연인데 시건방지게 얘기한다며 화냈다. 할 말은 하고야 마는 석율 때문에 결국 회의실 안에서는 고성이 오고 갔다. 문과장은 내 앞에서 뭐 하는 짓이냐고 일단 윽박질렀다. 으레 그러하듯 성준식을 달래고 한석율을 나무라며 다툼을 진정시킨 후 눈도 안 마주치는 부하직원들에게 퇴근 후 화해의 술자리를 제안했다. 그게 화근이었다. 요즘 성준식은 업무가 많아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한석율은 엄마가 형만 편든다고 화내는 둘째처럼 불만이 가득한 상태라 과음을 했던 것이다.

다음 날 두 사람은 모텔에서 눈을 떴는데 경악스럽게도 완전히 탈의 상태였다. 일반적인 남자 둘이라면 그렇게 경악스러운 일은 아닐 수도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한석율의 성 취향이 소수자라는 것이고, 성준식도 그걸 알고 있으며, 간밤에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확실히 알 수 있는 몸 상태와 방 상태였다. 그러나 이 사고에 대해 가타부타 말할 시간은 없었다. 두 사람은 9시를 십 몇분 남겨 놓은 시간을 보고 2차로 경악했다. 다행히도 그들이 투숙한 이름 모를 장소는 회사 코앞이었다. 허둥지둥 뛰쳐나와 엉망인 상태로 출근해서 회사에서 양치를 하고 머리에 물을 쳐바른다. 야근을 대비해 한 개씩 가져다 놓는 셔츠와 양말을 바꿔 입고 신었지만 일이 될 리 없었다. 석율은 10분 단위로 발작하듯 고개를 흔들어댔다.

 

내가 성대리랑?! 미친!! 성대리잖아, 그 성대리! 으악!!’

 

그는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소리 없는 신음을 흘렸다. 한편, 준식은 파드덕거리는 뒷모습을 이따금 돌아다보며 다리를 떨었다. 그는 점심시간에 부사수를 옥상으로 불러냈다.

*

석율은 퉁퉁 부은 채 굉장히 마뜩찮은 표정으로 옥상 문을 열었다.

 

부르셨습니까.”

한석율.”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와 날카롭게 노려보는 눈을 보자마자, 석율은 현실적인 고민에 빠졌다. 일이 재미없게 될 것 같았다. 석율은 강요하거나 폭력적인 타입이 아니었으나 간밤의 일은 기억이 없었고, 준식이 성폭행으로 몰고 간다면 동성 간이라 할지라도 상황은 성기를 삽입당한 상대보다는 삽입한 자신에게 훨씬 불리했다. 남의 시선에 신경 쓰는 성준식이 이 문제를 수면 위로 떠올릴 확률은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데다 공론화시키지 않는대도 앞으로 몇 년간은 내내 잡힐 꼬투리가 될 것이다.

 

뭐라고 하지. 죄송합니다? 안 돼. 사과하면 내 잘못이라고 몰려. 없던 일로 해 주십시오?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말을 꺼내려던 준식은 벌써 딴 생각에 빠진 석율의 상태를 눈치 채고 찌푸리며 손등으로 가볍게 뺨을 쳤다.

 

아얏!”

정신 차리고 내 말 똑바로 들어.”

“..., , 말씀하십쇼.”

똑바로 말해. 어쩌다 너랑 내가 잤... 그렇게 된 거야?”

 

단어를 고르며 몸서리를 친다. 평소에 꼴보기 싫어서 늘 의식하고 있던, 거기다 동성인 부사수와 성적인 관계를 가졌음을 인정하기 싫은 것 같았다.

 

저도 취해서 정확히는 기억이.”

 

준식은 입 안으로 우물거리는 대답에 급격하게 분노를 터뜨렸다.

 

정치인이냐? 기억 안 난다고 하면 다냐고! , 이거 성폭행이야 이 새끼야.”

, 성폭행요? 취해서 일어난 일인데 상호 책임 아닙니까?”

상호 책이임? 이 새끼가 보자보자 하니까. 네가 그 쪽이고 난 아니면, 조심도 네가 해야 맞는 거 아니냐? 막말로 네가 게이 새끼 아니었으면 안 일어날 일 아니냐고. 너 내가 이거 그냥 안 넘어가.”

 

역시 재미없게 돌아간다. 석율은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경멸감을 드러내는 말투에 화가 나는 건 둘째치고, 아무리 머릿속에서 그물질을 해 봐도 기억나는 건 단 하나도 없었다. 대신 상대방도 기억이 없는 것 같으니 무리수를 던지기로 했다. 확실하지 않은 기억에 자신감을 가지는 사람은 없으므로.

 

성대리님, 사실은요.”

, !”

정말 기억 안 나십니까? 아니면 기억 안 나시는 척 하시는 겁니까.“

이게 또 무슨 개소리야.”

사실은... 대리님이 저한테 좋아한다고 하셨습니다.”

웃기고 있네.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저도 취하셔서 그런 줄 알았는데 한 번만 자자고 매달리셨지 말입니다. 그러고 나면 마음 접겠다고 눈물까지 보이시면서 안기니까 할 수 없이.”

 

준식은 석율의 멱살을 잡아 당겼다. 화가 나서 입술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지금 어디서 수를 쓰고 있어, ? 그런 적 없어! 너 미쳤냐?”

정말 기억 안 나시나 보네요. 아침에 보니 후회하시는 것 같아서 저도 기억 안 나는 척 했는데, 성폭행이라고 몰아가시니 말씀드리는 겁니다.”

 

석율의 표정은 확고했고 말투는 차분했으며 시선도 똑바로 정면을 향하고 있었다. 물론 혼신의 연기였으나, 태도가 진실한 탓에 준식도 좀 흔들렸다. 말마따나 기억이 거의 없어서 절대 아니라고 백퍼센트 확신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괜찮습니다. 감정은 부끄러운 게 아니잖습니까.”

아니라고!!”

부인하고 싶으시면 저도 그냥 잊은 척 하겠습니다.”

 

흐릿한 기억을 더듬느라 준식의 시선이 방황하는 동안, 석율은 인사를 했다.

 

더 하실 말씀 없으시면 저는 인사과에 가야 해서 이만.”

 

그는 옥상에 준식을 남겨 놓은 채 나왔다. 준식은 그 자리에 선 채 기억을 곱씹었다. 술 마신 것 까진 기억이 나고, 문과장이 먼저 집으로 갔고, 그리고...? 거기서 필름은 끊겨 있었다. 자신의 감정을 돌아봐도 성적으로 좋아해서 욕망한 적 따윈 없었다. 괴롭히고 싶다는 생각은 늘 했던 것 같다. 뭘 하는지 시시때때로 살폈고 굳이 괴롭히고 나서는 풀이 죽어 침울하게 앉은 걸 보며 은밀하게 기뻐하곤 했다.

 

이게 설마 좋아하는 감정인가.’

 

잠시 스스로에게 의심을 가졌던 준식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그럴 리가. 이 자식이 면피하려고 거짓말하는 거야. 괘씸한 새끼. 요딴 식으로 나오겠다 이거지?’

 

그는 여전히 뻐근한 허리와 더 아래쪽 부분에서 올라오는 통증을 느끼며 분노했다. 당장에는 열이 뻗쳐서 몰아붙였지만, 냉정하게 판단해서 상대가 저렇게 나오면 자신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성별이 달라 한 쪽이 약자인 입장도 아니고 술도 같이 마셨으므로. 화가 치밀어 숨을 씩씩거리던 준식은 눈을 굴리며 다른 방향으로 골릴 궁리를 했다.

*

석율은 또다시 소회의실로 호출이 되자 한숨을 푹 쉬었다. 뭐라고 해도 아까의 입장을 견지할 생각이었다. 결연하게 문을 열고 들어가 사수를 마주한 석율은 아까와 다른 분위기를 감지하고 경계심에 차서 입술을 꾹 눌렀다.

 

왜 또 부르십니까, 대리님.”

석율아, 내가 생각을 해 봤는데. , 앉아.”

 

눈을 내리깔았다 든 준식은 책상을 손 끝로 톡 톡 치며 석율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널 좋다고 할 이유가 없어. 평소에 그런 생각을 해야 취중에 나오는 거잖아.”

저야 대리님 감정까지 알 수는 없죠.”

사실은 나도 살짝 기억이 났는데.”

 

그 말에 보일 듯 말 듯 어깨가 흠칫 떨리고 시선도 흔들린다. 저럴 줄 알았지. 석율 역시 기억이 없어서 확신이 없음이 분명했다. 준식은 못 본 척 말을 이었다.

 

좋아한다고 말한 건 내가 아니라 너였어.”

, ?”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며 눈을 크게 뜬다.

 

네 마음을 인정하기 싫으니까 나한테 덮어씌우고 싶었던 거지. 이해해.”

아닙...!”

석율아, 네가 날 이 정도로 생각하는 줄은 몰랐다. 그런데 그게 내가 받아들일 수가 없는 형태에요~ 그러니까 마음 접어.”

 

준식은 태연하게 커피를 한 모금 삼키며 곁눈질로 부사수를 살폈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지 입을 뻐끔거린다.

 

, 저 대리님 좋아하는 거 아니거든요? ... !!!”

, 그래애? 그런데 그런 말은 왜 했어.”

그런 말 한 적 없습니다!”

확실해? 난 기억하는데.”

......”

기억 안 나는 척 하고 싶으면 어쩔 수 없고. 하여간에 나 포기해. 형은 이쁜 애기들, 섹시한 언니들이 좋은 사람이야. 어둠의 세계에 나까지 끌어들이지 말라고오~ ?”

아아 아니 진짜로! 그게요! 어둠의 세계? 끌어들...? ??”

 

어디서부터 따져야 할지 막막해서 석율이 갈팡질팡하는 사이, 준식은 후욱 한숨을 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애틋한 듯 석율을 보았다.

 

나 좋다는 놈을 구박할 수도 없고. 난감하네.”

아니라고요!!!”

그래 아니다, 아니라고 쳐.”

 

준식은 석율을 뒤에 남겨두고 먼저 나갔다. 석율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썼던 수에 그대로 당하고 있을 확률이 99퍼센트였지만, 역시 기억은 전혀 없었다. 남은 1퍼센트의 만약에때문에 자신감 있게 대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다시 필사적으로 기억을 더듬어 보고, 이마를 화이트보드에 쿵 박았다.

*

석율은 뒤를 돌아보았다. 벌써 스무 번도 넘은 것 같았지만 신경이 쓰여서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곱슬곱슬 머리카락이 춤추는 뒤통수를 노려보고, 고개를 돌려 노트북 화면을 보며 어영부영 일을 하다 다시 휙 돌아본다. 스물 한 번째로 고개를 돌렸다 노트북으로 시선이 돌아온 순간, 사내 메신저 메시지가 화면에 떴다.

 

[성준식 대리님: 좀 부담스럽다, 석율아. 나 포기해.]

 

아니라고오오!!! 석율은 소리 없이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준식은 머리를 쥐어뜯고 고개를 처박는 부사수의 뒷모습을 보고 지갑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심 상태로 멍하니 책상 줄무늬를 세던 석율은 옆에 놓이는 커피컵을 보고 놀라 고개를 들었다. 탕비실 종이컵도 아니고 무려 싸제(?) 카페의 컵이었다. 돈 주고 사온.

 

이게...?”

 

얼빠지게 죽을 때 다 되신 거 아닙니까. 라고 물으려던 석율은 정신을 겨우 수습했다. 사고를 치고 아직 주인에게 들키지 않은 강아지마냥 눈치를 보며 한 모금 마신다.

 

감사합니다.”

나 잊고 좋은 여자, 아니 남자 만나라.”

푸업!!”

 

커피는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고 기도에 잘못 쏟아졌다.

 

크헉...콜록콜록, 아니라고요! 진쯔!!!”

알았어, 아니야. 알았다니까.”

...!!”

 

홧병으로 기절할 것 같이 열이 올랐던 석율은 다음 순간 백퍼센트로 확신했다. 만약의 확률은 없었다. 자신은 고백 따윌 한 적이 없을 것이며, 사수는 자신을 놀리며 괴롭히는 것으로 울분을 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안 그러고서야 성준식 성질에 침착하게 난 네 맘 못 받아줘 운운에, 잊어라 운운, 거기다 커피까지 자기 돈 내고 사 올 리가 없었다. 이러시겠다 이거죠. 석율은 조용히 컵을 내려놓고 눈을 가늘게 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였다.

*

문과장은 실무직에게 부하직원들의 행방을 묻고, 고개를 젓는 대답에 한숨을 쉬었다.

이 사람들이 하루 종일 어딜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거야?”

글쎄요...”

 

어제 분위기 안 좋더니 아직도 그렇구나 판단한 문과장이 둘을 어떻게 화해시킬지 고민하는 사이 그는 평소에는 성준식과 한석율의 사이가 괜찮다는 큰 오해를 하고 있었다 사수 부사수는 소회의실에 들어와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성대리님, 사실은.”

 

준식은 부사수가 심각한 얼굴로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몸을 똑바로 하자 멈칫했다.

 

사실은...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맞습니다. 전 대리님을 좋아합니다.”

?”

 

목소리 끝이 뒤집어진다.

 

항상 대리님을 생각하고 있어요. 얼굴 보면 미치, 미치겠습니다.”

 

준식은 석율이 다가오는 서슬에 얼굴을 굳히고 슬슬 뒷걸음질을 쳤다. 눈길이 이글이글 정열적이었다. 손으로 넥타이를 느슨하게 당겨 내리고 나지막히 속삭이며 가까이 온다.

 

몸이 뜨거워져요. 옷 꽁꽁 챙겨 입은 거 보면 머릿속으로 벗기고 있어. 당신이랑 하고 싶어서허.”

아오 씻빨 이 미친 도라이새끼!’

 

자기도 모르게 혐오 표정을 지어 버린 준식은 황급히 표정 관리를 했다. 여기서 티를 내면 지는 것이었다.

 

네가 했던 말 사실은 다 기억하고 있었네?”

제가 했던 말이라구요?”

그래. 석율아, 어젠 형이 술김에 맘이 약해져서 그런 거고, 너 받아줄 생각 없으니까 마음 접어. ~ 나 좋다는 사람은 왜 이렇게 많냐.”

 

선생님, 사수를 때리면 왜 안 되나요? 초자아에게 자문하며 주먹을 꾹 쥐고 자신을 억누른 석율은 은근하고 느끼하게 말을 이었다.

 

술김에 약해지시는 거면 한 번만 더 받아 주세요.”

...”

 

등이 벽에 부딪혔다. 준식은 당황해서 눈을 감았다 떴고, 그 짧은 사이 석율의 얼굴이 바짝 다가왔다.

 

이 사악한 새끼가... 이래도 뻥인 걸 인정 안 해?’

여기서 뻥이라고 하면 소시오패스 앞에서 내 입지는 끝인데.’

 

각자 머릿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 입술이 닿았다.

*

으악 진짜 키스했어. 석율은 기겁하며 입술을 뗐다. 준식은 눈썹 사이에 깊게 골이 패일 정도로 찌푸린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눈꺼풀이 가볍게 떨리며 검은 눈동자가 드러난다. 놀라서 홉떠진 두 시선이 부딪혔다. 여기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분명히 서로 재수없게 여기던 상대인데 금방 닿고 떨어진 온기가 아쉬웠고, 숨겨져 있던 코드가 일치한 것처럼 다시 입술이 닿았다. 목이 말라오듯 상대의 촉감이 부족했다. 석율은 눈을 감고 고개를 꺾어 키스하며 허리를 바짝 당겨 안았다. 차렷 자세로 떨어져 있던 준식의 두 손이 석율의 등을 마주 안았다. 방어적인 입술만의 키스는 안쪽까지 들어가 예민한 부분의 감각을 나누는 깊은 것이 되고, 석율의 허벅지는 준식의 다리 사이로 들어왔다. 떨어지자마자 아쉬워 다시 혀를 빨고, 턱 아래를 핥던 석율은 갑자기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깨닫고 경직되었다. 그는 몸을 뒤로 빼고 어찌할 바를 모르며 눈꺼풀만 감았다 떴다. 자신은 확실히 욕망을 느꼈다. 아까까지 거짓말이라고 백퍼센트 확신했던 자신감이 약해진다.

한편, 준식은 얼굴이 시뻘개져서 입술을 손등으로 닦아냈다. 좋아한다는 게 오기와 뻥이 아닌 진짜였나, 아님 이것도 오기의 연장선인가, 자신은 방금 왜 그랬는가를 번갈아 생각하느라 시선이 정신없이 방황했다.

 

“...거짓말해서 죄송합니다. 전 성대리님을 좋아하는 게 아닙니다.”

그럴 줄 알았다. 내가 자자고 했다는 것도 뻥이지?”

제가 고백했다는 것도 거짓말이시죠.”

“......”

거짓말이죠, ?”

 

준식은 버릇대로 입술을 깨물었다가, 석율이 즐겨 바르는 딸기향 립글로스의 맛을 제 입술 위에서 느끼고 당황했다. 석율은 침을 삼키며 대답을 기다렸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작은 회의실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

두 사람은 오래 이석한 것에 대해 한 소리 들었다. 전날부터 시작해서 너무 많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난 데다 몸도 찝찝해서 기분이 좋지 않은 준식은 상황이 허락하자마자 얼른 퇴근했다. 차 문을 여는 순간, 기둥 뒤에서 그림자가 튀어나오는 바람에 식겁한다.

 

성대리님.”

아 씹 깜짝이야! !”

저 성대리님 댁에 가도 됩니까.”

네가 우리집엘 왜.”

전 정말 아무 기억이 안 납니다. 그러니까 한 번만 더.”

한번만 더 뭐. 말을 끝까지 해.”

한번 더 자자구요.”

 

준식은 차 문을 세게 닫고 뒤를 돌아섰다. 아침에 느낀 황당함과 분노가 다시 밀려와 치켜뜬 눈으로 노려본다.

 

미쳤냐? 내가 왜.”

제가 왜 그랬는지.”

너 왜 그랬는지 알게 해 주려고 나보고 뒤 대라? , 소시오패스 맞네 이거. , 자아성찰을 하려면 혼자서 곰곰이 생각을 해 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있어. 비켜.”

어디 가시는데요?”

여친 만나러.”

여친은 무슨! 소개팅 하고 한 번 만나셨잖아요?”

, 이거 봐라? 그걸 어떻게 알아. 역시 나 좋아하나보다?”

그게 아니라...! 맨날 사무실에서 큰 소리로 얘기하시니까!! 그리고 한번 자나 두 번 자나 뭐 다릅니까?”

 

준식은 마음 속으로 앞으로 이 대사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본인이 할 땐 몰랐는데 남의 입에서 들으니 어이가 없었다.

다르지. 한 번은 실수지만 두 번은 각자 내켜야 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똑바로 얘기해.”

“...똑바로 얘기하면 내키시는 건가요?”

내용 들어 보고.”

 

살짝 자포자기해서 아무 말이나 던지던 석율은 의외로운 반응에 긴장했다. 그는 최대한 솔직하게 자신의 심정을 정리해 보려고 애썼다.

 

제가 대리님을 좋아하는 건 절대, 절대 아닌데요. 그게, 신경쓰여서 죽을 것 같지 말입니다. 아까 키스했을 때도.”

때도.”

솔직히 좋...... 좋았, 좋았고.”

렉걸렸어? 왜 이렇게 더듬어.”

 

얄밉게 대꾸하며 거만한 표정을 짓는 걸 보니 거절인 것 같았다. 아까 키스의 여파를 떨치지 못했던 석율은 고개를 숙였지만,

 

, 지은아? 오빤데. 미안한테 오늘 못 보겠다. 야근이야.”

 

그 자리에서 전화하는 내용을 듣고 고개를 다시 들었다. 전화를 끊은 준식은 휴대폰을 안주머니에 넣었다. 그는 화난 듯, 심란한 듯 가만히 석율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준식은 석율에게 다가가 키스했다. 석율은 열린 코트 안으로 들어오는 몸을 감싸 안았다.

*

제정신으로 하는 섹스는 굉장히 민망했다. 씻을 때도 그랬지만, 나와서 얼굴 마주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손발이 오그라붙을 것 같아서 괴로워진 준식은 엎드린 채 얼굴을 들지 않았지만, 등줄기를 타고 내려가던 혀가 생각지 못한 곳에 닿는 순간 놀라서 몸을 비틀어 뒤를 보았다.

 

너네 이런 것까지 해?”

너네가 무슨 말... , 그냥 가만히 계세요.”

 

으으으아아아으으. 준식은 베게에 얼굴을 묻고 신음을 뱉었다. 희한하고 소름끼치는 기분이었다. 석율은 평소에 다다다 빠르게 수다를 떨어대던 모습과는 너무 다르게 말이 없었고 집요했다. 세운 혀 끝이 정성들여 애무한 후 대신 손가락이 들어왔을 때에도, 마침내 삽입했을 때도 그 소름은 점점 부피를 더했을 뿐 사라지지 않았다. 서두르지 않고 끝까지 넣고 나서 아, 하고 낮게 터지는 탄성이 준식의 귀를 곤두서게 했다. 자연스러운 감각이 절대 아니었다. 뻐근하면서 그 곳에서부터 몸이 부식되는 기분이지만 쾌감은 확실했다.

두 사람의 목소리는 약간의 차이를 두고 엇박이 되어 흘러나왔다. 성준식의 어떤 체취, 어떤 촉감, 어떤 부분이 그를 미치도록 몰입하게 만들었고, 전날의 기억이 희미하게 무성영화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무게를 실어 추삽질을 하던 석율은 너무 빨리 가 버릴 것 같아 잠깐 몸을 뺐다. 준식은 앓는 소리를 냈다. 아까까지 무언가 들어와 있었던 곳이 화끈해지면서 안쪽이 시큰거리고 저렸다. 석율이 한 번에 다시 넣자 곤두선 안쪽으로 자극이 몰려 올라왔다.

 

, !”

 

짧은 신음을 터뜨리며 뒤로 젖히는 등 가운데가 옴폭 파인다. 유두를 꼬집어 비틀자 파들거리며 조여왔다. 머리가 띵해진 석율은 숨을 섞어 겨우 말을 꺼냈다.

 

하아, 왜 여자랑 만나요? 너무나 이쪽이신데.”

입 닥쳐. 넌 왜 나한테 이래, 남자랑 박는 새끼들, , 넘치잖아.”

그러게요. 하나도 취향 아닌데.”

나도, , 취향 아니...”

 

준식은 말끝을 맺지 못했다. 그는 다시 시작된 추삽질과 그에 따라 감당할 수 없이 밀려오는 쾌감에 원래대로 얼굴을 묻었다.

*

전 성대리님을 좋아하는 게 아니지 말입니다.”

 

베개에 묻혀 있던 얼굴은 아직도 새빨갰다. 곱슬머리는 헝클어졌다. 준식은 물기가 남은 눈을 찌푸리고 석율을 노려보았다.

 

~ 그래. 자니까 확실히 확인이 되십니까?”

불확실합니다. 한 번만 더 하면 알 것 같은데 말입니다.”

난 알겠는데? 넌 아니야.”

그것도 있다가 다시 생각해보세요.”

 

석율은 심술부리느라 얄팍해진 입술에 키스하고, 혀를 섞었다. 길쭉한 손이 그의 뒤목을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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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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