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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준식은 지금껏 타인을 볼 때 어떤 점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쓰일지를 중점적으로 살펴 왔다.이용가치가 있는가, 이용하기 용이한가, 어느 선까지 이용할 수 하는가.

 

그래서 사람 전체를 면밀히 관찰해 본 적은 처음이었다. 대상은 자신한테 반기를 들었던 제 부사수였다. 처음에는 석율이 소중히 여기는 것 뒤집어 말하면 약점 - 을 파악하기 위해서였으나, 그것은 곧 버릇과 비슷한 것이 되었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공적으로 보여주는 페르소나가 있게 마련이지만, 한석율의 그것은 남들보다 유난히 공고하고 몸에 밴 것이었다. 옛 공포극에 나오는 가면처럼 너무 오래 쓰고 있어 얼굴에 녹아 붙어 버린 듯, 페르소나와 실체는 경계가 흐려지고 섞여 한석율이라는 인간을 구성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성준식만은 그 가면의 경계를 구분할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그동안 준식 앞에서 석율이 가면을 쓰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립 이후 숨기기를 포기하고 얼굴에 그대로 드러내는 반감과 상처받은 감정, 숨길 생각도 없이 대놓고 끈질기게 살피는 시선까지.

 

둘 사이에서 끊어지지 않던 서로에 대한 의식은 단 하나의 스위치로 끌림이라는 감정으로 전환되었고, 현재 두 사람은 뜻밖에도 사귀는 사이가 되었다. 아직 서로에게 다정하거나 달콤하지는 않았지만 타인 앞에서는 나오지 않는 표정, 눈빛, 흔들림과 나약함은 보이는 기묘한 사이였다.

 

 

오후 4시 가량이 되면 업무에 쓰이던 머리가 과열되어 돌아가기를 멈추곤 한다. 준식이 상체를 뒤로 기대고 기지개를 켜자, 석율은 냉큼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를 가지러 갔다. 파블로프 반사처럼 장기간에 걸쳐 습득된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과장과 준식에게 한 잔씩 가져다 주고, 실무직 여직원에게도 눈이 접힐 정도로 미소 지으며 갖다 준 후 담배를 피운다는 명분으로 잠깐 자리를 비운다. 준식은 주변을 살폈다. 이 무렵이면 과장 역시 휴대폰을 들여다보거나 옆 팀과 잡담하는 타임이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뻔한 장소로 갔다. 점심식사 후 한 번, 이 무렵에 한 번, 하루에 두 번 석율이 동기들과 얼굴을 마주하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한 층 위 연결통로에 서자 유리창 너머로 벤치에 앉은 한석율과 그 옆에 앉은 안영이, 그리고 한 걸음 떨어진 곳에 선 채 담배를 문 장백기가 내려다보였다. 석율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특유의 요란한 손짓을 하고, 영이는 웃음을 터뜨렸으며 백기는 인상을 썼다. 좌우로 굴러가는 눈동자와 입을 앙다물고 고개를 기울이는 귀여운 척, 무언가가 의심스러운지 눈을 가늘게 뜨는 변화무쌍한 표정을 내려다보며 차가운 커피를 한 모금씩 마시던 준식은 석율이 고개를 드는 순간 그와 눈이 마주쳤다. 석율은 눈을 크게 뜨고 잠시 행동을 멈췄다. 그의 표정 변화에 두 동기가 위쪽을 올려다보았다. 커다란 눈을 두 번 깜빡인 석율은 금세 웃는 얼굴로 돌아와 준식에게 끄덕 가볍게 인사를 하고, 동기들의 팔을 찔러 주의를 돌리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준식은 커피를 다 마시고 손 안에서 종이컵을 구겼다. 쓰레기통에 아무렇게나 던져진 컵은 튀어나와 바닥에 굴렀지만, 그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후 발걸음을 재촉했다.

 

 

 

 

*

 

한석율, 여기 계약서 조항, ‘local court’ 이거 애매하잖아! 중국애들이 자기네 법으로 우기면 어떡할 거야? 독박 쓸 일 있어? ‘in the court of Korea’로 바꿔.”

금방 고치겠습니다.”

 

언성을 높여 나무라는데도 석율이 순순히 출력물을 받아 들고 고개를 숙이는 것을 보고, 눈썹을 치켜뜬다.

 

이제 안 틀릴 때도 되지 않았어? 은근히 허술해.”

그래서 성대리님 가르침이 필요한 거 아닙니까.”

 

넉살좋게 대답하며 귀여운 척 웃던 석율은 대놓고 빤히 응시당하자 표정을 조금 흐렸다. 검고 동공이 큰 눈동자가 석율의 양 눈동자를 들여다보느라 미세하게 움직이고, 미간이 찌푸려진다. 다른 사람의 표정을 잘 읽는 석율이지만 성준식의 경우 의중을 파악하기 힘들 때가 많아 난감했다. 이럴 때 를 물어서는 안 되는 것을 체득하여 알면서도, 그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왜 그러..십니까.”

 

애매한 말투로 묻고 애써 웃는다. 준식은 의자 등받이에 손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석율아, 나 좀 보자.”

 

강아지를 부르듯 까딱 손짓을 한다. 고개를 갸웃한 석율은 그의 뒤를 따라 탕비실로 갔다. 불러 놓고서는 한 마디 말도 없이 벽에 기댄 채 팔짱을 끼고 뚫어져라 보는 바람에, 석율은 몹시 불편해서 입술을 깨물었다가 미간을 좁혔다.

 

성대리님, ...”

 

그는 알면서도 결국 또다시 물었다, 말없이 응시하던 준식의 손이 두 뺨을 감쌌다. 다른 뜻으로 오해하고 눈을 감았던 석율은 아주 아프게 양 볼을 꼬집히고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두 뺨을 손가락으로 잡고 탈탈 흔든다.

 

~~~아허혀!!”

 

손이 떨어지고, 석율은 빨개진 두 뺨을 문지르면서 황당한 듯 준식을 쳐다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쓴다.

 

왜요? 뭡니까?”

 

준식은 대답 없이 재차 팔짱을 끼었다. 못마땅할 때의 버릇으로 입술을 좀 내밀고 있다.

 

저 뭐 잘못했어요?”

“......거슬려.”

뭐가요?”

네 얼굴.”

??”

 

어이없는 대답에 잠시 황망해하던 눈빛은 의심으로 짙어졌다.

 

뭐가 말입니까? 설마 잘생겨서요?”

내가 더 잘생겼지.”

에이, 그건 진짜 아니...! 뭐야, 수상해. 뭔데요? 뭐지?”

그냥 그렇다고.”

, 뭔데요오~”

 

눈썹을 팔자로 떨어뜨리고 말 끝을 늘이던 석율은 준식이 돌아 나가자 뒤를 따랐다.

 

뭡니까 진짜? ? 대리님!”

 

준식은 징징거리는 목소리를 뒤로 하고 밖으로 나가 비상계단 문을 열었다. 뒤따라온 석율은 등 뒤로 철문을 밀어 닫았다. 무시당해서 짜증이 돋은 얼굴은 붉어지고, 눈은 마음속을 들여다보려는 듯 일렁거리고, 똑바로 주시하는 시선에는 적당히 거리를 두는 사회적 표정은 한 치도 없었다.

 

석율은 제 사수가 슬쩍 웃는 것을 보고 의아함에 표정을 관리하지 못했다.

 

진짜 성격 이상하시지 말입니다.”

 

대놓고 하는 지적에 언짢아하기는커녕 보조개가 들어갈 정도로 확연히 웃는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를 희한한 반응이었다. 안절부절 못하던 석율은 준식의 손길에 움찔 물러났지만 아까와 달리 두 손은 뺨을 감쌌고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석율은 피부 위로 희미하게 숨결이 느끼고 본능적으로 일단 눈부터 감았다가 아니지 싶어 떴다. 그리고 역시나 통통한 귓불을 아프게 깨물렸다.

 

...!”

 

어깨를 움츠리고 눈물이 도는 눈으로 노려보디가, 포기했다는 듯 한숨을 길게 내쉰다.

 

진짜 성격....”

두 번 말하지 마.”

이상하지 말입니다.”

 

제 명령을 무시하고 끝까지 하는 말에 준식은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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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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