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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율은 크게 숨을 들이켰다 내쉬고는. 대강의실의 문을 열었다. 안에서 웅성웅성 떠들던 소리가 그가 문을 열자마자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진다. 약속이나 한 듯이 얼굴에 와서 꽂히는 시선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도 느껴졌다. 


그가 맨 뒷자리에 앉자 침묵이 서서히 깨지며 다시 웅성거림이 시작되었다. 


석율은 전공책을 꺼내고 필통에서 펜을 집어 내는 그저 일상적인 동작을 하는 것만으로도 안간힘을 써야 했다. 몸이 굳은 듯 움직이기 힘들다. 자기 몸이 아닌 듯이 낯설고 숨쉬는 것조차 의식해서 쉬는 기분이었다. 


그는 얼마 전 아웃팅을 당했다. 





*

며칠 전, 석율은 2년 된 자신의 연인과 헤어졌다. 같이 클럽에 가 놓고 다른 남자와 그의 눈 앞에서 키스하고 애무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며. 


그의 연인은 한국 최고의 명문대에 다녔으며 집안도 좋고 외모도 준수한 엘리트였다. 옷차림까지 강박적으로 완벽한 그는 자기 자신의 완벽함에 단 하나의 누가 되는 성벽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해서 늘 우울감을 토로하다가 그게 극에 달하는 날에는 석율을 탓하고, 그리고는 다시 사과하는 패턴을 반복했다. 석율은 그를 받아 주느라 숨이 막혔고 우울함이 전염되어 괴로워했으며, 낮에 학교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밝은 척을 하면서 자기 자신이 둘로 분리되는 듯한 괴리감을 느껴야 했다. 그래도 놓지 못하고 꾸역꾸역 이어지고 식어 가던 관계는, 연인이 ‘말하지 못했는데, 난 내일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난 너와 헤어지고 싶지 않으나 날 버려도 할 말은 없다’- 라고 선택을 떠밀듯 이야기하면서 끝장이 나고 말았다. 


석율은 취기와 분노, 원망이 한데 섞여 이성을 잃었으며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다른 남자와 그런 모습을 보여 준 것은 비뚤어진 하나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그의 연인은 그 자리에서 이별을 고했다.



그렇게 싸우고 헤어지고 집에 돌아오며 이제 이 관계는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실감하고, 술을 진탕 마셨다. 

다음날 저녁이 되어서야 제출해야 할 과제가 생각나 휴대폰을 꺼내 학과 홈페이지를 연 석율은 머리부터 얼음물을 뒤집어 쓴 듯 차가운 한기를 느꼈다. 


자신의 이름으로 올라와 있는 자신이 올리지 않은 글. 

제목에 한석율.이라고만 되어 있는 글에는 그의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남자와 키스하는. 

둘다 상의를 입고 있지 않은 그 사진은 어떤 오해의 여지도 없었다. 남자의 얼굴은 검게 칠해져 있었으나, 석율은 보는 순간 누구인지 알았다. 그의 연인이 셀카로 찍은 사진이었고 자신의 폰에도 있는 것이었으므로.



잠시 사고가 정지되었다가, 한기로 손이 떨리기 시작하더니 곧 온 몸이 떨려 왔다. 게시물의 조회수는 178. 이 페이지에 들어오는 학과생 수의 몇 배도 넘는다. 놀란 동기들이 몇 번씩이나 보았으리라. 밑에 달려 있는, 해킹이냐며 놀라는 첫 댓글을 필두로 줄줄이 달린 댓글을 볼 수도 없었다. 자신이 가장 숨기고 싶었던 부분, 아무렇지도 않게 섞이기 위해 괴로움을 참고 필사로 억눌렀던 부분을 모두가 유희거리로 보고 바닥에 던져 짓밟고 입방아에 올리고 있을 것이었다. 


굳어 있던 석율은 휴대폰을 바닥에 집어던졌다. 책장의 책도, 주변의 물건들도 잡히는 대로 집어던졌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격한 분노가 몸을 휩쌌다. 개새끼. 죽여버릴거야. 라고 외치던 그는 날카로운 통증을 느끼고 손을 보았다. 깨진 액자 유리의 작은 조각이 손바닥이 박혀 있다. 난폭하게 유리를 빼서 땅에 집어 던졌다. 숨을 몰아 쉬는 동안 열이 오른 머리가 차갑게 굳어 가면서, 헤어진 연인은 이미 한국에 있지도 않음이 떠올랐다. 대상은 사라지고 그의 분노와, 무방비하게 까발려진 그만 남았다. 


지잉-하고 액정이 깨진 그의 휴대폰이 울린다. 

층간 소음을 항의하는 아래층의 전화에 유령처럼 대답했다. 




*

그 후 한석율은 집에 칩거했다. 도저히 집에서 나와 남들 앞에 설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릴 때 자신이 남과 다르다는 것을 안 이후로 줄곧 숨겨왔던 것이었다. 누구와도 완전히 친해지지 않도록 벽 뒤에 숨는 것은 고통스러웠지만 자신을 지키기 위해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견뎠는데 그 모든 것이 무의미하기 짝이 없는 몸부림이 되어 버렸다. 


겉으로만은 친구관계가 좋았던 그였는데도 전화는 놀랍도록 한 통도 오지 않았다. 그것부터가 지금 그가 어떤 존재가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신호였다.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술을 마시고 밤을 새다가 새벽녘에서야 잠들기를 며칠 째, 오후 1시 쯤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액정에 뜬 이름은.




“...여보세요”


“한석율! 왜 안 와?”


“어. 형...”


“뭐가 어 형이야 지금~ 조장이 안나오면 발표 누가 하냐? ppt 얼만큼 했어?”


“아 그게.... 아직....”


석율은 미간 사이를 꾹 눌렀다. 뭐야. ppt? 조별발표? 기억이 잘 나질 않았다. 머리 속이 흐릿하고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아지익? 야....한석율. 빨리와라 지금~ 나 니네 집 앞 카페로 간다. 노트북 들고 와”


화가 잔뜩 섞인 목소리가 현실로 그를 잡아당긴다. 




석율은 뭐에 홀린 듯이 샤워를 하고, 면도를 했다. 죽어버릴까, 자퇴할까. 자책하면서 고민했던 것이 마비된 듯 무심결에 옷을 입었고 노트북을 집어들었다. 꿈 속을 걷는 듯 다리가 후들거렸고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여기!”


성준식이 손을 들면서 인사하는 것을 보고 기계적으로 그 곳으로 다가갔다. 


“왔으면 빨리빨리 앉지 서갖고 뭐해? 야 켜봐 빨리~ 내일이잖아!”


역정을 내는 그의 얼굴은 평소와 같다. 




*

성준식은 군복무 후 외국에 나가 있다가 다시 온 복학생이었다. 역시 복학하여 3학년이 된 석율도 처음 볼 만큼 학번차가 꽤 나는. 그는 유들유들하고 빠릿한 이미지로 평판이 좋았으나, 같이 복학생이니 친해지자는 사탕발림으로 같이 다녔던 석율에게는 재앙이었다. 과제 떠넘기기부터 밥 뜯어먹기, 노트 스틸, 술 담배 셔틀 등을 골고루 당한 석율이 어느 날 참지 못하고 욱하는 바람에 그와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었다. 물론 석율이 이겼으나, 그 이후 언론플레이에 능한 준식으로 인해 선배들에게 두루두루 두어달 욕을 먹고 나서는 결국 사과하고 굽히고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평소에 그가 꼴보기 싫은 것을 참느라 이를 부득부득 갈았던 석율은, 자신의 치부가 드러난 상황에서 하필 가장 경원시하는 준식과 독대하는 버거운 상황에 탈력 직전이었다. 


다른 조원들이 보내 준 자료를 화면에 띄우면서, 이 새끼 하나도 안하고 뭘 쳐 하고 있었냐며 욕을 하는 그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야. 뭐해. 이거 보고 일단 개요를..”


“형.”


구멍이 숭숭 뚫린 듯 윤기라곤 하나도 없는 목소리에 준식은 고개를 들었다. 


“왜”


“저.........”


여러 가지 질문들이 혀 끝에 머물렀으나 하나도 할 수가 없었다. 한참을 얼빠지게 바라보는 석율의 눈은 언제나와 달리 나약하고 흐려서, 준식은 미간을 찌푸렸다. 


“불러놓고 말을 안해 답답한 새끼가. 야. 나 올해 졸업해야 돼~ 빨리 시작해 빨리”


빨리 하라고 독촉하는 그의 기세에 밀려 석율은 자기도 모르게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

다음 날, 강의실에 들어가는 석율은 심호흡을 여러 번 해야만 했다.

부모님이 지방에서 서울로 보내 준 대학이다. 어쨌든 자신은 졸업하고 직장을 잡아 자기 밥벌이를 해야 함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계속 방 안에 처박혀 있을 수는 없음을 이성적으로는 알았으나 용기를 내기가 힘들었다. 어제 만났던 준식이 아니었으면 나올 엄두를 내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그와 마주 대하고 나서 석율은 약간 현실감각을 회복했고, 이를 악물고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강의실에 들어가서 만난 동기들의 반응을 보고 그는 다시 도망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입술을 꾹 깨물었다. 



“석율아. 메일로 ppt 보낸 거 봤어.”


같은 조원인 여자 동기 둘이 와서 말을 건다.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대답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 하는 석율을 향해 그녀들은 한 마디를 더 했다. 


“저기... 우린 아무도 너 이상하게 생각 안해.”


“그래. 우린 그런 거 다 이해해. 힘내, 응?”




우리?


이해?




힘내라고......?


하하. 석율은 실소를 지었다. 





*

철판을 깔고 동기들 앞에서 조별 발표를 하고 나니, 석율의 마음 속에서는 뭔가 한 풀 꺾였다. 날카롭게 날을 세울 기력도 없이, 될대로 되라 싶은 기분. 그러고 나자 무기력해짐과 동시에 반항적인 기분이 솟았다. 자신이 왜 눈치를 봐야 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그래서 석율은 고개를 쳐들었다. 


그날 이후 몇몇 남자 동기들은 야 한석율-하고 부르기도 하고, 같이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자고도 했으나 나머지의 불편해 하는 눈빛을 보고 점차 그를 부르지 않게 되었다. 여자 동기들은 안쓰럽게 그를 쳐다보았으며, 동정적으로 다가오거나 무한 이해를 표시하려고 하였다. 전자도 싫었지만, 후자는 더욱 싫었다. 그래서 그는 며칠만에 자연스럽게 아웃사이더가 되고 말았다. 

그 사이 성준식은 예비군 훈련을 가서 보이지 않았다. 





겨울이 다 되어 가는 11월 오후, 눈이 올 듯 흐려진 하늘 아래서 석율은 담배를 피웠다. 저녁 시간이라 학과 건물은 비어 있었고 단과도서관에도 사람은 거의 없었다. 조용한 공기 속에서 시든 등나무 덩굴아래 앉아 담배 연기를 후우~뿜어내는 그의 옆에 누가 와서 털퍽 앉았다. 


“나도 한 대”


성준식이다. 손에는 빈 담뱃갑을 꾸깃꾸깃 쥐고 있다. 

언제나처럼의 삥뜯기에 익숙한 석율이 한숨을 쉬며 담배를 내밀자. 준식은 불을 붙여 빨아들이고는 인상을 썼다. 


“멘솔피냐? 멘솔 느끼한데”


“그럼 다시 줘요”


“까칠하긴...”


한껏 연기를 들이키곤 볼을 부풀려 고리를 만든다. 석율은 그 고리들이 서서히 흐려지며 하늘 위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준식형”


“어”


“.........알고 있어요?”


너무나 태연한 태도에 재차 묻게 된다. 

석율은 그의 표정을 살폈다. 


“뭐, 너 호모란 거?”


예상보다 더 심한 돌직구에 허를 찔린 석율은 순간 푸핫 하고 짧게 웃음을 터뜨렸다. 무신경인지 무례인지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지만 왠지 속이 시원했다. 



“안 불편합니까?”


“왜, 너 나 좋아해?”


“절대”


석율은 단호하게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준식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근데 뭐. 나 안 좋아하면 됐어. 나 좋아하면 극혐”


“극...혐이요....?”


석율의 어깨가 떨리면서 웃음이 다시 터져 나오려고 했다. 준식은 두 발을 아무렇게나 늘어뜨린 채 계속 담배를 피워댔다. 


“남자끼리 뽀뽀하고 그러는 거 생각만 해도 토나온다. 나 좋아하지 마라 알겠지?”


“저도 취향이란 게 있는데요.”


“안 듣고 싶고”



매우 빠른 속도로 담배를 피운 준식은 한 대 더 내놓으라며 손을 내밀었다. 굉장히 니코틴이 다급한 모양이었다. 


“왜 그렇게 빨리 피워요”


“어. 나 담배 끊었거든.”


“예?”


“여친한테 끊는다고 약속해서 네 시간동안 못피웠다. 좀있다 만나면 또 못피워.”


석율이 기가 막힌 눈으로 바라보자 그는 짜증을내기 시작했다. 


“아 빨리 내놔봐 게이새끼야 빨리빨리”



석율은 소리내서 웃기 시작했다. 

"왜 이래 미친..." 이라고 중얼거리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더 웃음이 났다. 석율은 뿌연 물 속에서 숨을 참고 있다가 갑자기 차가운 공기로 머리를 내민 듯.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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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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